괴물 탈을 쓰고 거리를 점령하다슬로베니아 ‘쿠란트 축제’의 야생적 아름다움
1. 알프스 너머 작은 나라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
유럽 동남부, 알프스와 접한 슬로베니아는 잘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지만,
매년 2월 말이면 이 작은 나라의 마리보르 근처 프투이(Ptuj)라는 마을이 시끌벅적해집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쿠란토반예(Kurentovanje)는, 슬로베니아 최대이자 가장 오래된 전통 축제로
괴물처럼 보이는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거리 곳곳을 방울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채우는 이색 행사예요.
2. ‘쿠란트’는 괴물이 아닌, 농경의 수호자
쿠란트(Kurent)는 단순한 탈이 아니에요.
전통적으로는 겨울을 내쫓고 봄의 풍요를 불러오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졌어요.
축제 참가자들은 양털로 뒤덮인 옷을 입고, 뿔 달린 가면을 쓰며, 허리에 거대한 방울을 달아 흔들며 행진하죠.
그 모습은 마치 괴물 같지만, 사실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정화자’이자 ‘수호자'인 셈이에요.
특히 남성들만 입을 수 있었던 이 전통 복장은 최근에는 여성, 어린이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전통으로 진화하고 있답니다.
3. 단순한 퍼레이드? 아니, 마을 전체가 살아나는 축제
쿠란토반예 축제는 단순한 퍼레이드가 아니에요.
프투이 전체가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로 가득 차고,
거리 곳곳에 전통 음식 부스, 수공예 장터, 마녀 복장의 퍼포머, 불쇼, 음악 공연이 함께 열립니다.
특히 쿠란트 복장을 직접 체험하거나, 아이들이 작은 가면을 쓰고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모습은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진짜 축제의 느낌을 줘요.
4. 쿠란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슬로베니아의 쿠란트 축제는 단순한 전통 보존을 넘어서,
자연과 사람,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계절의 전환을 기념하는 예식이에요.
이 축제는 2017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역사적 가치도 크죠.
눈앞에 펼쳐지는 ‘괴물들의 행진’은 처음엔 낯설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삶의 전환점마다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환영하는 의식'이 필요하니까요.
유럽 감성의 또 다른 모습, 쿠란트 축제
쿠란트 축제는 일반적인 유럽 여행과는 다른 깊이를 줍니다.
이곳에 가면 카페나 박물관이 아닌, 사람들의 삶이 숨 쉬는 거리 한가운데서
계절의 흐름과 전통의 무게, 그리고 축제의 자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요.